[Essay] 26년 3월 19일

1. 우리, 일하려고 모인 거니까

    사회생활을 하며 마주하는 수많은 자기소개는 대개 비슷하다. 때론 별 생각없이 출신 학교가 매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다 보니 특히 회사에선 말을 아끼게 된다. 제법 괜찮은 사회인의 가면을 쓰고, 서로가 약속이라도 한 듯 세련된 역할극을 수행한다. 한 시간 넘게 대화를 나눠도 마음 한구석이 헛헛한 건, 그것이 마치 속내를 알 수 없는 낯선 소개팅 대화 같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3월의 가장 큰 변화는 도서관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퇴사 이후 프리랜서로 월급만큼은 벌기까지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는데, 그래도 장점을 꼽자면 시간을 유연하게 쓸수 있다는 것이다. 주변 비슷한 업무환경을 가진 지인들은 해외를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내향적인 나에게 용기를 낸 한 걸음은 지역구 도서관이었다. 우연히 본 홍보물에 이끌려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풍경은 예상보다 훨씬 선명했다.

    첫 오리엔테이션 날, 열 댓명의 사람들이어색하게 둘러앉아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문찐, 문화 찐따라는 아들의 말에 충격을 받아 문화를 탐구하고자 오신 분, 헬스장 가기 전 애매하게 뜨는 시간을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쓰고 싶었던 두 아이의 엄마, 그리고 내일이면 운영하던 베이커리를 폐업하고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준비를 하는 청년까지.

    “다시 돌아간다면 바꾸고 싶은 때가 있나요?”라는 랜덤 질문에, 힘들었던 과거를 극복한 지금의 내가 좋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던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나는 삶의 깊이를 보았다. 처음 보는 이들에게 건네는 낯설고 투박한 고백이었지만, 누구 하나 재촉하지 않고 차분한 눈으로 그 진심의 마침표를 기다려 주었다.

    2. 가장 자연스러운 나로 존재하며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일

    분명 똑같이 ‘일’을 하려고 모였다. 그런데 환경이 달라져서일까, 마음이 일렁일 만큼 따뜻했다. 그곳에는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 상대가 나를 어떤 이미지로 평가할지에 대한 계산이 없었다. 오직 ‘우리가 어떻게 하면 시민들에게 더 나은 경험을 줄 수 있을까’, ‘이 일이 내 삶에 어떤 의미일까’라는 본질만 이야기했다. 오늘 처음 만났고 결국 일 이야기만 했는데 모인 사람들의 개성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조건 없이 헌신하겠다는 마음, 그 공통의 감각이 사람들을 묶어준 것일까. ‘제가 좀 더 말해도 될까요?’라며 조심스럽게 꺼내놓던 동료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이 자리에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일을 사랑하는 마음을 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설렘이었다. 가장 자연스러운 나로 존재하며 기여할 수 있는 일. 타인에게 다정한 온기를 전하며 동시에 나의 영혼을 채우는 일. 거창한 타이틀은 없지만, 서로의 서사를 존중하며 묵묵히 곁을 지키는 그날의 연대는 나에게는 가장 귀한 일이자 휴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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