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사랑해도 존엄성과 바꿀 수는 없어요
2022년, 존경하던 멘토에게 보냈던 편지의 제목이다. 그때의 반박은 지금 내가 하는 일의 견고한 기준이 되었다. 지금의 나는 스스로를 예술가이자 기획자라 정의한다. 하지만 내가 다루는 캔버스는 그림이 아니라 사업과 시스템이다.
『지적자본론』의 저자 마스다 무네아키는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어야 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여기서 디자인이란 단순히 겉모습을 꾸미는 테크닉이 아니다. 그것은 본질을 꿰뚫어 보고 가치를 제안하는 힘, 즉 ‘지적자본’ 그 자체를 의미한다. 내가 사랑하는 기획자의 일은 바로 이 지적자본을 시스템으로 구조화하는 과정에 있다.
이 길을 걷는 이유는 내가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아무렇지 않은 사회생활에서 결례가 악취로 느껴졌고,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만큼의 부와 재능을 갖지 못했다. 예민함은 때로 나약함이라는 이름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이 기민함은 반드시 지켜야 할 ‘존엄성’의 경계를 알려주는 감각이다.
비즈니스는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시스템이 아무리 고도화되어도 그 설계를 맡은 기획자의 인격이 비어 있다면, 그 기술은 타인을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기획을 사랑하는 기획자는 클라이언트의 고유한 결을 이해하고, 그들의 존엄이 훼손되지 않도록 가장 적합한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한다. 기성복 같은 솔루션이 아니라, 한 사람의 철학에 맞춘 ‘테일러 엔지니어링’이 필요한 이유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명확하다. 나의 예민함이 결함이 아닌 ‘가치’가 되는 곳에서, 이득을 위해 존엄을 팔지 않아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다. 이 고집에 공감하며, 각자의 지적자본으로 세상에 고유한 궤도를 그리고 있는 동료들을 만나고 싶다. 정답이 없는 인생에 혼자라면 선언에 그치겠지만, 함께라면 시스템이 된다. 나는 우리가 충분히 그렇게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편지 전문>
주말의 귀한 시간 내어 건네주신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말씀대로 제가 ‘프로 기획자’라는 명확한 지향점을 동경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역할이 다른 것보다 특별해 보였기 때문이 아니라 제 마음에 더 와닿는, 자연스레 더 좋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임을 명확히 하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저의 강박을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이나 ‘상처받은 자의식 과잉’으로 해석하신 점은 속상합니다.
세상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시절, 제가 예민한 부분을 타인에게도 배려하고 싶거나, 있는 그대의 저로 살기 위해선 소속집단의 인정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제가 좋아하는 일로 즐길 수 있는 경지에 빨리 오르고 싶다는 욕심, 실수조차 허용되지 않는 형편이라는 자책에 조급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이미 많은 실패와 실수를 했고, 그럼에도 살고 있습니다 제게는 예민한 것이 누군가는 필요없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그의 대단함이 나의 대단함과 다를바 없다는 무상함, 정답이 없다는 자유, 다양성에 정말 공감합니다.
제가 ‘회사와 맞지 않는다’고 말씀드린 것은 상처를 피하기 위한 회피가 아닙니다. 그 상처를 제게 필수적인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이정표로 삼고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 존엄성이 무너진 인간관계가 얼마나 해로운지 깨달았다는 고백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모든 회사가 그렇지 않으니 앞으로 계속 시도하겠지만, 없다면 외국계나 해외로, 그도 없다면 프리랜서로 제가 감당가능한 클라이언트와 일할 것 입니다.
그렇게 쉽게 돈 벌 수 있냐고 반문하신다면, 누군가 승진에 밤낮없이 일하듯 제게 중요한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그럴만한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제 과제일 것입니다.
제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어떤 상황에서도 이득과 존엄성을 교환하지 않으며, 타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것 입니다.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못 받는 것 같아 피해의식이 있었던 때도 솔직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압니다, CSPP(당시 팀) 때부터 제가 한 실수는 제 장점을 발휘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상대와 상황인지 분별하지 않거나, 그렇지 않다고 판단이 선 뒤에도 진심을 다한 것입니다. 모두가 완벽할 수 없기에 인간적인 마음으로 한 일이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그것이 제게는 그 일을 더이상 사랑할 수 없게 만들만큼 고통스러웠고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며 이제는 확신합니다. 제 상처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단지 누군가에게 아무렇지 않은 일이 제게는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저의 다름, 다양성, 저만의 오답인 것이죠.
어떤 직무, 근무 형태이든 저는 같이 일하는 사람의 인격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고, 그를 알아볼 수 있는 날카로운 감각과 언어적 표현력이 강점입니다. 정답없는 인생에서 스스로에 대한 이해해 기반한 시작에 서있습니다. 충분히 잘 만들어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 좀 더 믿고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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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자본으로서의 기획, 시스템은 만든 이의 인격을 투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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