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에이전트 만들기에 최적화된 리소스

멀티 페르소나

챗봇에 누군가의 특성을 나열하고 그 사람에게 최적화된 답변을 작성한 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agent 시대의 설계자로 움직이는 첫발을 내딛은 겁니다. 사실 이런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건 그동안 사람에 대해 자신이 경험해온 편견과 패턴이 어떠했는지에 따라 그 결과물의 완성도도 달라질 것 같습니다.

타이드스퀘어에 있을 때, 저는 경영난으로 인해 조직 구조가 2주단위로 변하는 조직을 경험했습니다. 한국식 표현으로는 ‘정치적이다’라고 하죠. 문제를 정말 해결하고 싶었다면 TF나 개인 성과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전개하면 될텐데 어떤 본부의 크기와 직급이 중요한 건 분명 조직 내부의 지형 문제일 것입니다. 바뀌는 조직구조에 맞춰 약 5백명의 사원 중 당시 가장 나이와 연차가 어렸던 ‘신입 기획자’였던 저는 3개월 단위로 업무가 바뀌었습니다. ‘기획자’라는 역할이 내공이 부족할때는 잡부처럼 되기 쉽상이니까요.

그래서 콘텐츠 제작, UXUI 디자인, 액셀로 광고성과 정리하기, 빅쿼리로 데이터 전처리하기 등

데이터 엔지니어, 개발, 마케터, 디자이너, PM을 3개월 단위로 경험했고 당시에는 이 팀이 이번에는 진짜 마지막이다라고 생각했고… 제가 원해서 바꾼 것도 아닌데 소속 팀장님에게 3개월 안에 성과를 입증하지 않으면 다른 팀에게 또 버려질(?) 수 있다는 압박이 늘 있었기 때문에 몰입해서 일했습니다.

당시에 가장 힘들었던 건 ‘물경력’이 돼서 이 조직에서 버텨 쌓은 경험이 결국 고생 대비 의미없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AI가 대중화돼서 저에겐 매우 기쁜 기회가 되어줄 것 같습니다.

특히 몇달간 개인사업자로도 지내보고, 쿠팡에서 약 2백?2천 명의 개인사업자 고객사를 상대로 영업을 담당하며 결국 비즈니스를 지속하려면 ‘지시할 정도의’ 이해도가 필요했는데요.

솔로프리너 시대에 AGENT를 오케스트레이션 하려면 결국 원래 자동화되기 전에 그 일이 무엇이었는지, 왜 수백년 동안 그 역할이 사라지지 않고 채용공고에 올라오는지를 알아야겠죠. 해보면 애초에 그 역할이 필요없고 다른 역할과 융합되면 좋겟다고 생각할 수도, 절대 대체할 수 없고 위임에 한계가 있다고 느낄수도 있죠.

한국 작가 니키리가 뉴욕미술관(조사필요)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 작품이 팔렷는데, 6개월 간 다양한 문화의 일원으로 직접 살아보며 사진으로 그 순간을 기록한 작업입니다. 그리고 정체성에 대해 묻죠. 아주 가변적이라고요.

한편으로는 페트리샤 무어의 노인으로 3년간 직접 살아본 UX 리서치가 생각납니다. 당사자가 되어보지 못하면 모른다는 것이죠. 그녀는 일반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노인을 주체적인 개인으로 1970년대에 끌어올렸습니다.

직접 살아보는 것이 가장 깊은 곳에서 부터 꼬인 근원을 찾아내는 방법이라는 것,

동시에 하나의 정체성에 얽메일 필요도 없지만 사회를 살아가면 뜻하지 않게 깨끗한 이력서 만들기 에 실패했다면… 오히려 온실 속 화초가 아니라서 당신이 실질적인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션에는 더 유리할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더이상 당신이 선택할 수 없는 ‘타이틀’에 당신의 매일 불리는 이름이, 정체성이 갇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클라우드도 지능모델도 사실 전부 빌려온데다 내 통찰을 갖다 붙인 거 잖아요? 그래서

진짜로 공감하는 문제에 나를 던지고 싶고,

무력감에 질려버린 사람이라면 AI & English Native가 되어야 합니다. 갑자기 영어는 왜냐고요? mit 연구에 따르면 영어권 사용자에게 훨씬 유리하다고 하더군요 지능모델이. 애초에 자연어 비중이 전체 웹 기준으로 영어가 압도적입니다. 내 주권을 지킬수 잇는 사람들과의 접점을 확보하기에도, 기술을 더 잘 다루기에도 영어가 유리합니다. 그리고 지능을 다루면 됩니다.

하여튼 3개월 단위로 it 플랫폼 직무들 찍먹해본 기획자로 다른 직업들을 찍먹하게 된 요즘, 페트리샤 무어 만큼은 아니지만 니키리 프로젝트 만큼은 그것이 삶이 된 사람이 할 수 있는 기획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나아가 그것을 실행할 수 있을까요? 제 스스로도 궁금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떤 사람이라고 제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요즘 가장 어려운 질문이 ‘너 요즘 뭐해?’나 자기소개 입니다. 더이상 몇가지 단어로 말하기 어려운 수준이 아니라.. 비전이나 추구미, 철학도 바뀝니다. 현장 노동자로 있을 때는 노조에 가입하게 될것만 같지만, 관리자의 입장이 되면 목소리의 톤이 바뀌게 됩니다. 이랬다 저랬다 줏대 없다고요? 상황과 사람에 따라 유연하지 못하는 것은 고이는 것, 정체성보다는 아집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서로다른 이해관계가 긴장되며 절충안이 나와야 하는데, 아무래도 세상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더 들어주기 때문에 같은 역사를 반복하는 것일까요?

제 삶이 정체성 프로젝트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거지같게도 나는 자유의지를 신에게 이미 약탈되었다. 카뮈식 사고를 정신승리하는 수밖에 없다. 어차피 떨어질 바위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올려놓는 것이다. 거지같지만 죽지 못해 이렇게 하기로 했다. 조직에서 나는 노동과 돈을 교환했고, 세상에서 나는 신과 자유의지와 생을 교환했다. 남은 것은 내 영혼에 있어서 만큼은 오로지 나자신을 만족시킬 방법을 찾는 것인데, 그것을 결국 예술가가 되는 길이다.

바이럴 되려고 하면 안그래도 내것이 없는데 감정에 의해 영혼까지 잠식 당할 수 있다. 하여,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루를 살아내는 것 밖에 없다. 세상과 고용주가 만들어 낸 ‘해야만 하는 일’ 속에서 사실 해야만 하는 것은 없고 하고 싶지도 않은 내 영혼만 깨어 있는 것이다.

액자 속의 액자, 속의 내 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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